
망원동 피피커피에서 배운 것
망원동에는 개성 있는 카페가 많다.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갖춘 곳부터, 신상 디저트를 파는 곳까지. 하지만 피피커피는 그 흐름과는 거리가 멀다. 오래된 간판, 소박한 공간, 그리고 오직 커피. 여기선 커피가 주인공이다.

기다리는 법
요즘 카페에서는 주문하자마자 커피가 나온다. 하지만 피피커피에서는 기다려야 한다.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는 사장님 덕분(?)에 기본 20분은 예상해야 한다.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다.

융드립 커피는 과정이 중요하다. 하루에 쓸 융을 미리 세팅하고,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새 원두를 갈아 천천히 물을 부어 추출한다. 그 손길이 워낙 신중해서, 멍하니 보고 있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. 마치 무대 위에서 배우가 연기하듯,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감상하는 느낌.

한 잔의 커피
진한 맛의 융드립 커피를 주문했다. 첫 모금에서 묵직한 바디감이 입안을 채운다. 그리고 몇 초 후, 신맛이 끝에서 톡 하고 튀어 오른다. 마시다 보면 침샘이 자극되는데, 그 순간 함께 나온 얼음물을 마시면 안개가 걷히듯 맑은 맛이 다시 살아난다. 맛의 변화가 확실해서 흥미롭다.
초콜릿을 주문하면 노란색 작은 망치도 함께 주는데, 이것도 피피커피만의 귀여운 디테일. 바를 쪼개 먹는 재미가 있다.
20년 동안 한 자리에서
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커피 맛 때문만이 아니다. 2003년부터 2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, 같은 방식으로 커피를 내려온 사장님의 시간 때문이다.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하나만 고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, 이곳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.
그래서일까. 젊은 사람들도 꾸준히 이곳을 찾는다. 유행을 타지 않는 것,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것이 주는 신뢰감. ‘진짜’를 찾아오는 게 아닐까 싶다.
그날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셨지만, 그냥 커피만 마신 건 아니었다.
망원동에서 조금 느린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, 피피커피에서 기다려보는 것도 괜찮다. 조급함을 잠시 내려놓고, 한 잔의 커피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니까.
(여기서 커피를 마시다보면 거지같은 직장동료도 용서할 수 있을것만 같은...그런느낌?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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